예고편을 보았을 때는 나름대로 기대가 컸다. 마침 UFO 관련 자료가 공개되기도 하고 세계 정세가 혼란스럽던 참이라, 음모론을 정면으로 다뤄서 흥미를 끌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근 행보가 다소 아쉬웠을지라도 감독의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에 내심 기대를 품었다.
마침내 개봉일이 되어 네이버를 켰다가 눈을 의심했다. 첫날 평점이 이토록 처참한 경우는 생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묘한 오기가 생겼다. 도대체 어떻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는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순간 허탈한 실소만 흘러나왔다. ‘이게 끝이라고? 그래서 본질이 뭔데?’ 라는 의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둘째는
오직 제목 그대로의 사건만 맥락 없이 이어질 뿐이다.
외계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는 이들과 이를 은폐하려는 집단이 벌이는 추격전이 서사의 전부다.
‘폭로의 날’이라는 사건 자체를 스크린에 전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 (폭로의 날이지만 폭로된 내용이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거대한 진실이 드러날 듯 긴장감을 고조시키더니 결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외계인이 실존하며 그동안 국가가 이들을 은폐하고 고문했다는 폭로 방송을 내보내는 장면이 전부다.
정작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본질적인 물음은 전부 건너뛴다.
외계인은 누구이고 왜 지구에 왔는지, 어째서 지금 시점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폭로 이후 세상의 모습도 내팽개쳐 둔 채 성급하게 막을 내리니 무책임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설득력 면에서도 허술함이 가득하다.
두 주인공만이 어째서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지 아무런 당위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작중에 등장하는 핵심 도구인 ‘기기'(The Device) 역시 그렇다. 대사로는 대단한 역할을 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더니 정작 보여주는 용도는 정신 조작이 전부다.
그나마 다른 기능이라면, 잘못 만졌다가는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부작용?
인물들의 동선과 설정도 군데군데 삐걱인다.
주인공 마거릿의 능력은 적대 기관인 워덱스 수장의 직속 부하에게는 어째서인지 통하지 않는 듯 묘사된다.
수장을 비롯한 조직원 대다수가 방관하는 와중에 유독 그 부하 한 명만 끈질기게 주인공 일행을 쫓는다.
게다가 워덱스 수장이라는 인물은 결말부에서 주인공들을 포위하고도 말 그대로 앉아서 방관할 뿐이다.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가 겪는 상황 역시 황당하다.
워덱스 수장이 ‘기기’를 가지고 정신 조작을 감행해 신분이 완전히 노출되었음에도 기관은 조력자를 추적하지 않는다.
주인공 일행이 차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다고 오해했다 한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금세 추적을 재개했어야 마땅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동행했던 조력자가 디바이스를 훔쳐 갔으리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결말부에서 여자 주인공에게 디바이스를 전달하는 도구로 쓰기 위해 방치해 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베일에 싸인 음모 세력이라던 워덱스는 뭘 위해서 지금까지 아둥바둥했나 싶다.
영화 곳곳에 배치한 종교적 은유도 겉돈다. 서사적 깊이를 더하기보다 두루뭉술한 상징으로서만 기능한다. 무수한 종교 가운데 기독교적 도상만 고집하는 전개도 외계인이라는 소재와 어색하게 충돌할 뿐이다.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인 소통과 공감 역시 공허하다. 갈등을 조율하고 이해에 이르는 과정을 인물들의 성급한 대사 몇 마디로 뭉뚱그려 해결하기에 도무지 감정이입이 어렵다. 도리어 진실을 알리겠다는 이들의 일방적인 강요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나치게 낙천적이거나 혹은 지독하게 무심한 태도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작가주의 범주에 넣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나 제임스 그레이의 <애드 아스트라>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급된 영화들은 최소한 서사의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다. 반면 <디스클로저 데이>는 내내 쫓고 쫓기는 달리기에만 골몰하다가 정작 문을 열어야 할 결말부에 이르러 멈춰 선다. 전개만 하다가 성급히 막을 내린 미완성 서사나 다름없다.
예고편이 주는 기대와 본편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웅장한 대서사시를 보여줄 것처럼 포장하더니 정작 알맹이는 끝없는 추격전에 그친다. 과거 <마이 웨이>(2011)의 예고편을 보고 장엄한 전쟁 영화를 기대했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마라톤 드라마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이 고스란히 겹친다.
음모론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조차 실망을 감추기 어려울 법한 아쉬운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