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둥글게 둥글게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왕과 사는 남자” 역시 이야기의 구성과 운명은 이미 세상에 드러나있다. 즉, ‘스포일러 된’ 영화라는 점이다.

이런 영화일 수록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어쩌면 장항준 감독의 전작인 “리바운드”에서 보여준 것 처럼 “왕과 사는 남자”도 과정 사이를 특유의 막 모난 곳 없이 ‘둥글게’ 잘 만들어낸 영화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즐겨보는 영화 유튜버들은 다소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감독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바라는 채찍질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영화가 침체된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런 영화조차 귀하게 느껴져서 ‘내가 재미있게 본게 잘못된 걸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가도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었기에 이름모를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아쉬웠던 점: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감정을 깨는 답답한 초반 유머코드

영화 초반부 사냥 장면에서, 조용히 있으면 아무 문제없을 상황에서 굳이 한마디를 거들어서 사냥을 망치는 장면은 대체 무엇을 위한 장면일까 싶었다. 영화를 두 번씩 보고난 후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 캐릭터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과근거리 사냥은 모두가 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일텐데, 그 후의 인물들의 반응도 뭔가 어긋난 기분이었다. 좀 더 담백하게 진행하여 다음 장면으로 이어져도 큰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CG는 언제쯤 괜찮아지려나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 CG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노루는 그런대로 넘길 수 있었는데, 호랑이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호랑이가 움직일 때 마다 프레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아직도 게임보다 못한 시각효과로 관객을 설득하려고 하는건가 싶었다. 이제 한국 영화도 촬영 기술과 후반 작업에 더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서사의 분산, 캐릭터 활용의 아쉬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홍위와 엄흥도 사이의 서사는 충분히 설득당했다. 하지만 궁녀와 마을 사람들, 금성대군과 얽힌 이야기들은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여러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인물들과의 깊은 유대감(라포)를 형성하기에는 좀 짧은 느낌이었다. 서사의 빈 부분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 채워 넣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궁녀 역의 전미도 배우나, 마을 사람들 역으로 나온 배우들도 그들의 역량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분량이 적었던 점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좋았던 점: 그래도 영화를 받치는 힘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

보수주인 엄흥도 역의 유해진 배우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배역 그 자체였다. 이홍위 역의 박지훈 배우 역시 드라마 “약한 영웅”에서 보여준 것 처럼, 모든 걸 포기할 듯 연약하지만 그 안에 강인함을 품은 폐위된 왕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엄태산 역의 김민 배우도 돋보였다. 가장 인상적었던 건 한명회 역의 유지태 배우인데, 첫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인 포스로 캐릭터의 서사를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절묘한 감정의 완급조절

설 연휴 개봉작답게 꽉 찬 극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기 좋은 영화였다. 반복의 묘미를 살린 유머와 ‘살짝 눈물이 맺힐 정도’로 절제된 신파 요소 덕분에 상영관 내의 관객들과 감정적 동질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결론: 관객은 여전히 영화관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는 크게 모난 곳 없는 둥글둥글한 완성도를 갖춘 영화였다. 최근 한국 영화계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만큼, 이토록 기본기가 탄탄하고 안정적인 대중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반갑고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높아진 티켓값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여전히 좋은 영화라면 기꺼이 영화관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기 전에, 다양한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롭고 탄탄한 한국 영화가 더 많이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