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스: 왜 다른게 생각나지?

결론적으로 픽사의 신작 <호퍼스>는 전작인 <엘리오>에 이어 무난했다. 다음은 <토이 스토리 5>를 기다린다. (사실 아직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다들 명작이라고 하니 오히려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기분이다.)

오늘은 <호퍼스>를 보고, 주인공 ‘메이블’의 행동과 기술적 시선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호퍼스> 주인공 ‘메이블’은 ‘발암캐’인가?

영화 보기 전 리뷰에서 주인공이 소위 말하는 ‘발암 캐릭터’라고 해서 걱정부터 했다. 사실 영화의 갈등을 만들고 이야기 전개를 위해 다소 무리하는 캐릭터의 행동과 결핍은 흔하지만, 요즘 관객들은 콘텐츠를 보면서 스트레스받는 것을 꺼리는 편이기에 그런 반응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현실에 지친 ‘요즘 사람’이기에 과장된 모습은 지치기 마련이다만, 영화 속 주인공 ‘메이블’의 행동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할머니와의 추억: 바쁜 부모님 대신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연못을 지키고 싶은 마음
  • 제리 시장의 계획 저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동물을 강제로 내쫓으려는 시장의 계획에 맞서는 정의감

이 정도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한 명분이었다. 그렇다고 무모한 것까지 정당하다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기술적 시선으로 본 <호퍼스>

영화의 핵심 설정인 호핑 기술(Hopping; 인간의 정신을 동물형 로봇에 옮기는 기술)과 제리 시장이 동물을 내쫓기 위해 사용한 고주파 스피커는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 BCI(Brain-Computer Interface): 뇌 신호를 분석하여 기기를 제어하거나, 사용자의 의도를 전달하고 하는 기술
  • 생체 모방 로봇: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특성을 모방해 만든 로봇
  • 음파 무기: 소리를 사용하여 상대를 부상시키거나 무력화하는 무기

동물과 소통하는 기술을 제외하면 이미 현실에 존재하고 연구 중인 것들이다.(최근 관련 연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상 전쟁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영화에서 동물들을 내쫓기 위해 사용한 기술이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장면을 보며, 최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모습과 겹쳐면서 뭔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 모를 연구소에서는 이미 이런 기술들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소드 아트 온라인>도 현실이 되기까지 시간 문제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실존한다면 호핑 기술을 개발한 샘 교수는 국방 및 과학계 엄청난 대접을 받을 것 같다. (생명공학, 로봇공학, 컴퓨터 공학 등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인데 이걸 한데 묶는 기술을 완성했으니 말이다.)

익숙한 결말, 그러나 남는 찝찝함

영화는 애니메이션에서 늘 그렇듯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픽사답게 익숙하고 교훈적인 결말이지만,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기술은 눈부시게, 아니 이제는 두려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래는 다가오는데, ‘과연 나는, 인류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건가?’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뇌과학자는 AI는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이라는데, 쓸려오는 변화에서 내가 발붙일 곳이 있을까, 그리고 인간이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일면을 건들 때 발생할 문제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시작과 끝에 하나씩, 총 2개의 쿠키 영상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모두 확인하길 바란다.

한 줄 평: 픽사의 상상력이 현실의 기술적 가능성을 만났을 때 생기는 오묘한 파장